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사찰

강화도 전등사 추억 여행 1.

강화도 전등사는 쉼없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나에게는 35년이란 추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강화도는 전체가 역사에 섬이기도 하다.선사시대 유적부터 국조 단군에게 제사 올리는 참성단과 청동기

시대의 묘제인 지석묘 고려 때에는 임시 수도인 강도로서 정묘호란 (1627년) 때에는 임시 피난처로

기억되고 근세에는 병인양요 (1866년) 때 프랑스 군대와 전투로 유명한 삼랑성 신미양요 (1871년)때 미국함대와

격전을 벌인 광성보 등의 유적이 있으며 1876년 치욕의 강화도  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372년)에 아도화상이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하였다 한다.그러나 실제로는

고려 원종7년 (1266년) 중창 기록이 나오니 그시대가 사찰의 내력이라고도 본다. 전등사에 위상은

조선시대 사고를 지키는 사찰로서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했던 선원각과 장사각이 경내에 존재 했어으므로

국찰로서 왕실에 인정을 받았다.

 

 

아래 사진은 35년전 여름 전등사를 처음 답사 갔을때 사진이다.

지금에 전등사는 새 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공사 중이라

옜 추억을 떠올리며 한가롭게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전등사 남문에서 오르는길 소나무가 아름답다.

 

 

 

 

 

전등사 남문 .

 

 

 

 

 

 

 

 전등사 윤장대 윤장대란 불교 경전을 넣은 책장을에 축을 달아 돌릴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윤장대는 보물 제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전통 다원도 있어 다원 뜰 나무아래서 차 한잔에 여유도.

 

 

 

 

대웅보전 (보물 제178호) 크지않은 아담한 건물이지만 대조루를 오르면 정면으로 볼수있으며

대웅보전은 (1605년)에 일부가 불탔고 광해군 6년(1614년)에 다시 불이나 건물 전부를 태웠는데

광해군 13년 (1621년)에 다시 완성했다.대웅보전은 약 3백 86년 정도 되었다.

혹 전등사를 가면 대웅보전 처마 자락 각 모서리를 올려다 보면 여인에 나체상이 두손으로 처마 지붕을

떠 밭들고 있는 형상의 목각 인형을 볼수 있는데 여기에는 대웅보전 건립때의 슬프고 애닮은 전설이 자리하고

있다.대웅보전을 중수할때 여기에서 일을하던 목수가 아랫마을 여인과 사랑에 빠저  장래를 약속 했는데

대웅보전이 완성될 무렵 여인은 벌어다준 돈을 모두 가지고 사라저 버린 것이다.목수는 태어나서 어머니에게도 버림을

받고 성인이 되어 사랑했던 여인에게 버림을 받자 다시는 여인을 보지 않겠다며 나를 버리고 나를 속인 여자들을

원망하며 여자에 나부상을 깍아서 영원히 무거운 짐을 지고 살라 하며 대웅보전 처마밑에 나부상을 넣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습니다 전등사에 가면 전설을 되새기며 올려다 보면 사랑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고통을 함께 생각하면 또 다른 배움에

여행이 될것입니다.

 

 

 

전설에 나부상 영원히 저 무거운것을 ...

 

 대조루..

 경내에 작은 수생 식물이 꽃을 예쁘게 피었네요 .

 

 

 

 

 

종루 전등사 범종 보물 제393호 이다 전등사 범종은 중국 종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 종과는 달리 용두에 음관이 없고 종 몸에는 몇 가닥에 굵은 선이 돌려저 있다 .

어떤 연유로 전등사에 와 있는지 모른다.일제 말기에 군수 물자로 차출 되었다.

해방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하여 전등사에 다시 봉안된 것이라 한다.